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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張保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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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 충헌공 장정필(張貞弼)
안동장씨의 시조 (安東張氏의 始祖)
시조의 초휘는 길(吉)이요, 후에 다른 나라에서 쓰던 이름으로 공을 높이는 것은 의가 아니라고 하여 정필(貞弼)이라 개명하셨다. 관직은 통합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統合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公信) 태사(太師) 충헌공(忠獻公)이시다.
시조께서는 888년 당나라에서 태어나 892년 부친 원(源)께서 당말의 병란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신라로 오실 때 다섯 살이었다. 처음 상륙한 곳은 명주 현강능(경포호반)으로, 후백제 견훤의 세력 확장으로 남쪽 지역이 불안하자 동해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내륙으로 들어와 충주(중원소경) 부근에 정착하셨으며, 부친의 묘가 원주에 있다.
공은 18세에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쓰셨다. 황제의 부름을 받아 성균관을 재건하고 이부상서가 되었으나, 간신의 무고로 신라로 돌아오셨다.
이후 고창으로 내려가 김선평, 김행 공과 교류하였고, 930년 1월 병산대첩에서 고려군을 승리로 이끌어 후백제 몰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왕건은 김선평에게 대광, 장길과 김행(권행)에게 대상 벼슬을 내리고, 안동을 식읍으로 주었다.
시조께서는 이후 고려 왕실을 도우시다 91세로 향수(享壽)하셨다.